과학 - 우리가 알아야할 모든 것 책정리 세번째입니다.
과학은 16세기 중 후반 들어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접어든다.
바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통해서다.
그 전에 갈릴레오에게 많은 영감과 선지식을 주었던 과학자들부터 만나보자.
티코 브라헤
(1546.12 ~ 1601.10)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오토는 추밀고문관으로 왕을 섬겼으며 여러 나라의 대위로 재직한 다음 헬싱보리 성의 영주를 지냈다. 티코는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표현을 이 책에서 썼다.
'이 시기에 과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부유한 집안의 자손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토지와 경작 그리고 주요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부를 차지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돈이 있는 집안에서 돈이 드는 과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1560년 8월 21일 있었던 일식은 티코가 천문학에 빠지게 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그는 법학을 공부하면서 천문학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많은 관측장비들과 책을 구입했다.
이미 알려진 별들의 위치에 대해 정확도가 생각보다 훨씬 뒤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고 1563년 8월 24일 일어난 토성과 목성의 합은 관측표의 예측을 한달이나 일찍 벗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다.
이 때 나이 16세. 제대로 된 행성의 운행표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기한 현상을 관측하고 지속적으로 관측하는 것이었다.
1572년 11월 11일 카시오페이아 별자리에 별 하나가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더구나 그 별은 더 밝게 빛났다. 그 당시에는 별들이 수정구에 고정된 채 영원히 빛을 내뿜는다고 믿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별을 분간할 수 있는 방법은 카시오페이아에 인접해 있는 별들을 기준으로 하여 그 위치를 정하고 나서, 그 위치가 혜성이나 소행성처럼 변하는지 아니면 별처럼 항상 똑같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다행히 <<육분의>> 의 제작을 끝마친 상태여서 항상 그 별을 집중적으로 관측했다. 이 별은 18개월동안 사라지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너무 밝아 낮에도 볼수 있었지만 1572년부터는 점차 희미해졌다.
1573년 소책자 <새로운 별, De Nova Stella>이 탄생했으며, 이 제목에서 우리는 천문학 용어인 '신성,nova' 을 얻게 되었다.
1577년 혜성을 발견하고 티코는 1587년과 1588년에 걸쳐 대표작 < 새로운 천문학 입문> 을 펴냈다.
티코의 생각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으며 태양, 달 고정된 별들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태양 그 자체는 다섯 행성들의 궤도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데 수성과 금성은 태양의 궤도 안쪽에서 돌고 있고 화성 목성 토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지만 그들의 궤도 안에 태양과 지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체계에서는 이심과 소원이 제거되었고 태양의 움직임이 행성들의 움직임과 뒤섞이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티코는 행성들의 궤도 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바꿈으로써 외부의 우주공간 대부분을 고정된 별들로 채워놓았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행성의 궤도를 수정구와 같은 물리적 실체와 관련짓지 않고 행성의 운동을 보여주는 기하학적 관련성에 결부시켰다는 점이다.
50대에 접어든 티코는 평생에 걸쳐 쌓아놓은 자신의 관측 자료를 가치있게 사용할 요하네스 케플러와 이미 서신을 주고받고 있었다.
케플러
(1571.12 ~ 1630.11)
요하네스 케플러는 12세의 나이로 아델베르크의 신학교에 입학했다. 1588년 17세가 된 그는 성직자 양성과정을 받으면서도 수학, 물리학, 천문학 등을 공부했으며 뛰어난 성적을 받았다.
하지만 케플러는 다른 과학자들과는 달리 가족들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신학공부과정에서 대학의 수학교수 미하엘 매스트린은 케플러와 같은 전도유망한 학생들에게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와 코페르니쿠스 체계들을 설명해주었고 케플러는 태양 중심 우주모델의 위력과 단순성을 찾아냈다.
케플러가 유명해진 계기는 점성술로 인한 예언달력을 만든 것이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케플러는 시력이 나빠 뛰어난 관측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순수이성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주의 본성을 설명해내려고 시도했던 고대인들의 정신적 발자취를 뒤쫓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가 만든 정육방면체의 기하학적 천상모델은 기학학에 근거한 우주모델을 또한번 제시했다는 점에서 좋았지만 행성들의 궤도가 원이 아니라 가늘고 긴 타원형이라는 것을 보여주자마자 곧바로 사라지고 말았다.
케플러는 1597년 <우주의 신비>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일수록 궤도를 더 천천히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관측 결과를 끄집어내, 행성들은 태양에서 뻗어나와 그것들을 밀고 있는 힘(활력)에 의해 궤도를 따라 계속해서 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케플러는 내 목적은 우주의 기계가 신적이며 영적 존재와 비슷한 것이 아니라 시계와 비슷한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케플러는 당시 갈릴레오와 티코와 서신을 주고 받고 있었고 티코에게는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1600년 2월 4일 과학적 천문학의 토대를 쌓았던 두사람이 티코가 천문대를 세운 베나트키 성에서 만남을 가졌다. 케플러는 여기서 조교로 활동하면서 1601년 티코가 유언으로 방대한 보고를 책임지는 일을 케플러에게 맡기고 죽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재정적 곤란함은 계속되었지만 행성운동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케플러의 법칙
1법칙(1605) : 각각의 행성은 태앙의 둘레를 타원형을 이루며 돌고 있는데 태양은 타워의 두 초점 중 하나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2법칙(1602) : 태양과 태양의 둘레를 따라 돌고 있는 행성을 연결하는 가상선은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면적을 휩쓸고 지나간다.
3법칙(1618) : 어떤 두 행성의 주기의 제곱은 태양에서 그 행성들 까지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예를 들면 태양에서 화성까지의 거리는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의 1.52 배이기 때문에 1.52세제곱은 3.51 이다. 반면에 화성에서 '년'의 길이는 지구에서 년 길이의 1.88 배이기 때문에 1.88제곱 은 3.53 이다.
1604년 광학에 대한 책을 출판한 그는 눈의 작동방식 즉 광선이 망막 앞이나 뒤에 맺히기 때문에 나쁜 시력을 갖게 된다고 서술하였다. 이미 300년 넘게 안경을 사용하면서도 그 이전에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이용하여 천문학을 실험하고 그의 발견이 퍼져 나간 후 망원경의 작동방식을 설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