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과학

과학 #2 - 토머스 딕스와 브루노

라꾸네 2017. 1. 8. 19:10

과학 - 우리가 알아야할 모든 것 책정리 두번째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 가 출간되고 난 후 극소수의 사람들 중에 토머스 딕스라는 사람이 있다.

 

레너드 딕스

(1520~1559)

토머스 딕스의 아버지. 과학자이자 최초의 대중과학 운동가.

그의 첫번째 책 <예측, 1553> 은 영어로 쓰여져 있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551년경 계측 작업과 관련하여 경위의(수평축과 연직축의 둘레를 자유롭게 회전할 수 있는 망원경과 그 회전각을 정밀하게 읽을 수 있는 눈금장치가 되어 있는 광학기계) 를 발명했다. 거의 같이 시기에 반사망원경과 굴절망원경을 발명했다.

 

토머스 딕스

(1546~1595)

아버지가 죽자 후견인 존 디의 보살핌을 받았다. 존 디는 전형적인 르네상스 자연철학자, 훌륭한 수학자, 연금술 연구자, 엘리자베스 1세의 조언자이자 점성술사였다. 코페르니쿠스의 열렬한 초창기 팬으로 유명했다.

1571년 아버지의 유고작 <판토메트리아>의 출판이 이루어졌다.

1572년 초신성의 모습을 보고했다.

1576년 아버지의 첫번째 책을 개정한 것으로 <지속되는 예측> 이며,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모델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실려 있었다.

그 모델에 대해 영어로 쓴 최초의 책이었다.

그는 우주가 무한하다고 언급했으며, 태양을 중심으로 수많은 별들이 모든 방향으로 펼쳐져 있다고 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굉장한 도약이었다.

그가 죽는 해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바도바 대학교에서 수학교수가 되어 있었고 브루노는 코페르니쿠스 모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1600년 화형을 당했다.

 

브루노

(1548~1600)

그가 화형을 당한 것은 헤르메스주의로 알려진 운동의 추종자였기 때문이다. 모세의 시기 이집트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전을 바탕으로 한 신앙이었으며, 이집트의 신 토트(학문의 신)의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었다. 태양은 이집트인들의 신이었던 까닭에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놓았던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이 이 헤르메스주의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6세기말 카톨릭 교회는 예수의 탄생을 예언한 고대의 문서들에 관용을 베풀었지만 브루노는 이집트 종교가 참된 신앙이라고 극단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로마의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브루노에 의해 어쩌면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이 엮인 것은 불운이었을 것이다.

그의 사상이 당시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교회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은 탓에 그와 관련된 모든 사상들이 한통속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1616년에는 교회에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금서목록에 포함시킨 것은 교회의 습관적인 게으름때문이었다.

그러나 1600년 이후 코페르니쿠스주의가 확실하게 교회로부터 냉대받고 있었으며 그가 화형을 당한 것은 갈릴레오와 같은 사람들이게 고무적인 일은 결코 아니었다.

브루노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가지 않았다면 코페르니쿠스의 사상이 그렇게 반감을 살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과학은 좀 더 부드럽게 전개되어 나갔을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